예정일 이틀전 남편 무릎에 엎드려 컴퓨터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밤 9시쯤이었나.. 가진통보다 조금 더 아니 많이 더 아픈 진통이 시작되었다. 조금 더 있으니 신경을 긁는 고통이 느껴져 남편과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그 때만해도 집안 여러 불들을 껐는지 확인할 정신이 있었다 (이후에는 놉)
- 초진
36주쯤 되어서 약속잡은 집 앞 클리니쿰으로 찾아가 출산병원을 등록했을 때 간호사는 진통이 느껴지면 바로 Kreißsaal (분만실)로 찾아가 문 앞 벨을 누르라고 했었다. 남편과 바로 소아과병동 2층 Kreißsaal 벨을 눌렀다. 남편은 들어가지 못하고, 혼자 들어가 먼저 산파의 초진을 받았다. 이 후에는 의사가 아기가 잘 있는지 초음파를 다시 한 번 봐 주었다. 산파는 자궁문이 거의 열리지 않았다고 집으로 돌아가 속옷에 피가 비치면 오라고 했다.
- 진통제 투입
진통은 심해지고 있는데 집으로 가라니.. 식은땀이 나고 눈앞이 캄캄했지만 일단 집으로 다시 돌아가, 바로 화장실로 갔는데 속옷에 피가 비쳤다. 곧바로 바로 병원으로 출발할까 하다가 전화를 먼저 걸었다. 방금 전 내진 후 산파가 진통이 심해지는데 긴가민가하면 이리로 전화하라고 하면서 연락처를 주었던 것이다. 전화를 해 피가 난다고 하니 일단 다시 분만실로 오라고 했다. 산파는 다시 진료를 보는 대신 일단 진통제를 주겠다고 하면서 링겔을 손등에 꽂았다. 지금 생각난 것이지만, 이 때 손등에 꽂힌 바늘은 이후 진통제 또 한번의 투여를 위해 또 출산 후에는 과다 출혈로 손실된 철분을 보충하기 위한 철분주사를 맞기 위해 계속 꽂아 두었고 거의 5-6일 후에나 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늘이 꽂힌채 신생아를 케어하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 병원에서의 진통없는 1박 + 점점 커지는 진통
이미 밤이 늦었기에 나는 진통제를 맞은채로 바로 위층 입원실로가 침대에 누웠다. 3인실이었는데 바로 옆자리에 제왕절개를 막 끝내고 온 산모가 있었다. 그녀는 밤새 소리 지르며 고통스러워 했기에 병실 분위기는 정말 무섭고 우울했지만 나는 진통제 덕분인지 잠을 잘 자진 못했지만 고통없는 밤을 보냈다. 아침에 남편이 면회를 오면서부터 그리고진통제가 모두 투여된 이후부터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어떻게 밥을 먹고, 어떻게 화장실을 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너무 아파서 오후 4시쯤 간호사실로 겨우 찾아가 내진을 다시 해 달라고 부탁했다. 간호사는 직접 아래 분만실로 찾아가 내진을 부탁하라고 했다. 한발 한발 겨우 떼면서 남편의 도움을 받고 가 내진을 받았는데 산파는 아직 자궁문이 1센티밖에 안열렸다고 진통제를 중단해야 자궁문이 빨리 열릴 것 같다고 했다. 내심 진통제 투여를 다시 해주기를 기대했건만.. 분만실을 나오면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남편은 이제 저녁 6시면 면회시간이 끝나 집에 가야하고, 나는 진통제 없이 혼자 온전히 고통을 느끼며 밤을 보내야 할 껄 생각하니 두려움에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그날 밤 잠을 한숨도 못자고 침대 옆 봉을 잡고 몇분에 한번씩 신음소리를 내며 고통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 2차 진통제 투여
새벽 6시쯤 도저히 안되겠어서 다시 간호사실로가 내진을 받아야겠다고 분만실에 연락을 넣어달라고 했다. 분만실에는 처음보는 세번째 산파가 있었고 내진을 해 보더니 자궁문이 4센티정도 열렸다고 아직은 분만을 시작하기는 이르지만 너무 아프면 진통제를 다시 투여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통주사를 맞을 때 필요한 동의서를 함께 주었다. 남편이 오자마자 동의서를 들이밀었고 싸인을 받았다. 진통제를 맞고 효력이 끝날때쯤 다시 고통이 찾아왔다. 이후 다시 어떻게 점심을 먹었고,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은 안난다. 엄마에게 아직 진통중이라고 하자 걱정어린 문자를 받았던 것만 기억난다. 그리고 나서 다시 오후 4시 도저히 참을수가 없어 몇발음 떼었다 섰다를 반복하며 분만실까지 기어갔다. 또 처음보는 네번째 산파는 내진을 해보더니 이제 무통주사를 맞으러 가자고 나를 부축하며 분만실까지 데려다 주었다.
- 무통주사후 약 1시간 후 출산
무통주사는 마취과 의사가 등 뒤에 어떻게 바늘을 꽂아서 맞았다. 거의 40시간의 진통을 느꼈기에 바늘은 진짜 들어간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무통주사를 맞고 있는데 무통없이 출산했을 엄마가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 의사는 조금 놀라며, 괜찮을꺼라고 위로해줬다.
마취과 의사는 의느님이 맞다!! 무통 주사를 맞으니 고통은 사라지고 평온이 찾아왔다. 그러자 두번째 초진을 했던 산파가 들어왔다. 오늘 내가 애기를 받을꺼야. 무통주사 효과가 끝나기 전에 낳아보자. 산파가 얘기했다. 그리고 나서 한시간 뒤에 양수물에 팅팅 부은 내 아이가 5-6번쯤 힘을 준 끝에 나왔다. 비로소 찾은 온전한 평온. 너무 감사했다. 그러나 가끔 유튜브에서 본 감동적인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출산이 이렇게 힘들다고 얘기해 주지 않은 부모님에게 서운했고, 애를 받는 산파라는 직업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고, 자연분만은 내 생애 이걸로 끝이라는 생각만 했다… 45시간의 진통 후 출산이었다.. 출산 후 여러 기본 검사 후 아이는 내 가슴에 얹혀진 채 나와 함께 3인실로 가 내 침대 옆 아기 침대에서 5일을 함께 머물렀다.
- 무통주사 부정적인 효과
무통주사를 맞고 고통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던 나는 너무 급하게 힘을 준 나머지 회음부가 크게 찢겨지고 말았다. 무통주사 기운에 빠르게 처치를 받았지만 이 상처는 이후 1-2개월까지 나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회음부가 크게 찢어지면서 출혈이 컸고 그 때문에 5일간 철분주사를 맞아야했으며, 가족실을 얻을 수 없었던 나는 매일 밤 남편없이 아이를 온전히 케어해야했다.
- 산후 우울증의 서막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그 시간들 때문이었을까 아이가 태어나고 난 1달 후부터 몸도 마음도 급격히 시들어갔다. 나의 기대보다 더 컸던 출산의 고통 때문이었는지 이후 새롭게 맞닥뜨리는 뭔가가 있을 때 마다 나는 두려워했다. 급기야 내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두려움 + 밤 수유 때문에 불면증이 생겼다. 불면증이 생기니 몸은 더 힘들어지고 체력이 딸리니 우울해지고 악순환이었다. 나는 결국 친정엄마를 프랑크푸르트로 소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