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4주

성별 검사 결과 확인

2차 기형아 선별검사 NIPT 검사를 받은 지 정확히 1주일이 지난 어제, 담당 산부인과의로부터 메일이 왔다. 

“모든 게 정상입니다. 혹시 성별에 대해 알고 싶어요?”

바로 답했다.

“네 그래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30분 후 도착한 메일…

“남자아이입니다.”

“…”

노산의 리스크를 조금 덜었다는 사실,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지만 동시에 아주 조금 실망했다. 

타지에서 근무를 했던 아빠와 그리고 나이차도 꽤 있는 데다 결혼까지 일찍 한 오빠와 전혀 친하지 않았던 나, 반대로 엄마와 무슨 얘기든 허심탄회하게 하는 나는 내 엄마와 나와 같은 관계를 내 하나뿐일(?) 아이와 갖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학창 시절 사실 마마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엄마와 아주 각별한 사이였다. 맞벌이였던 엄마가 퇴근하면 함께 분식집을 들려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고, 이후에는 엄마가 맥주 한잔을 마시는 것을 지켜보며 엄마의 상사 욕도 들어주었다. 시간이 될 때마다 엄마와 집 앞 공원을 산책하며 학교 얘기 친구 얘기 무슨 얘기든 공유했다. 무엇보다 나의 취미는 그림 그리기였는데 중2 때까지 주말이면 가끔 이젤을 가지고 풍경화를 그리러 엄마와 함께 나가고는 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4-5시간 동안 엄마는 책을 읽으면 가만히 내 옆을 지켜주었다. 

은연중에 나는 이런 모녀 관계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나 보다.  

그런데 아들은… 참으로 생소하다. 남편은 “아들이래..”라는 나의 말에 나와는 달리 꽤 좋아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도 일전에 본인은 엄마와의 관계보다는 아빠와의 관계가 더 돈독했었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워킹맘의 딸로서 저녁과 주말의 시간들을 나름 효율적으로 엄마와 보냈다면, 남편은 조금 더 긴 시간들을 여유롭게 아버님과 보냈던 것 같다. 아버님은 시간을 내어 아들과 달리기와 자전거 연습을 하고, 집 앞 바닷가에 같이 가 수영을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아버님이 시간을 내어 무엇이든 자기를 가르쳐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려고 했다는 그것이 남편 마음에 참 따뜻하게 남은 것 같다. 

아무튼 아들… 나는 내 아들과 내 엄마와 가졌던 그런 따뜻한 시간들을 공유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잠이 들었다.


선천적 복수 국적자에 관하여 

오늘 아침 부엌에서 과일을 먹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난 아이가 아들이지만 (병역의무가 있지만) 당신의 프랑스 국적 외에도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 

외국인인 남편은 대답했다.

“그런 선택권을 주면 아이가 18세가 되어 한국 국적을 유지하기 위해 군대를 가겠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대답했다.

“그건 성년이 된 아이의 선택이니, 우리가 존중해 줘야겠지.”  

남편은 나의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이기 조금 힘들다고 했고 아이가 이제 막 성년이 된 때에 그런 중요한 선택권을 주는 게 좋지는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시간이 많으니 조금 더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고민해 보자고 하고, 거실로 돌아와 아이의 출생신고 관련 정보 검색을 위해 노트북을 켰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와 같은 다문화 가정의 경우 아이는 출생 시 “선척적 복수국적자”가 된다. 

선척적 복수국적자의 경우 남자의 경우는 병역의무를 이행하고 싶지 않으면 만 18세가 되는 해의 3월 이전까지 (여자의 경우 조금 더 나중인 것 같다 만 22세였던 듯) 국적이탈신고를 해야 한다. 만약 이 시기를 놓치면 만 37세까지는 국적이탈 신고를 할 수 없고 (즉 병역의무가 유지되고) 이후에야 국적이탈 신고를 할 수 있다. 즉 만 18세가 되는 해 3월까지 국적이탈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37세까지는 병역의무를 가지게 되는데 국적도 포기가 안된다는 것.

하지만 나는 이 것을 한국 정부에 내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아이는 “단수 국적자” 즉 프랑스 국적만 가지는 것으로 이해했다. 즉 내가 출생신고 안 하면 내 아이는 이런 골치 아픈 절차(국적이탈 절차)에 연루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국적이탈신고 후 심사기간은 무려 1년..

그런데 인터넷으로 여러 정보들을 읽어보니 내가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출생신고와 상관없이 내 아이는 내 혈통을 물려받으므로(한국인의 혈통을 물려받으므로 혈통주의에 의거) 대한민국 국적을 자동적으로 부여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법이 이러한 까닭은 원정출산을 통해 미국 시민권만을 선택하여 아들의 병역의무를 기피시키려고 하는 행위를 방지하고자 홍준표법이 2005년 제정되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만약 부모가 병역의무 기피를 위해 원정출산을 하고 대한민국에 돌아와 그 자녀가 미국 시민권을 동시에 가지고 살다가 만 18세에 대한민국 국적 반납할게요 할 수 없게 즉 이들이 국적이탈 절차를 밟더라도 국적이탈 심사에서 탈락될 수도 있도록,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 국적자라면 아예 대한민국 시민권을 부여하고 강제로 유지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언뜻 보기엔 이 홍준표법이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문제는 이 법 제정에 대해 부모들은 잘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미국 이민 2세들이 많은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즉 미국 국적만 가진 사람이 지원할 수 있는 직업 분야들이 존재하는데(아마 국가 방위 관련 직업들인 것 같다) 자신들이 한국 국적을 가진 것을 알지 못했던 많은 이민 2세들이 만 18세/만 22세 국적이탈 신고기간을 놓치고(당연히 놓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한국 국적을 가진 것을 모르므로..) 이러한 직군에 지원했다가 퇴짜를 맞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첫 국적이탈신고 기한을 놓쳤으므로 만 37세까지 다음 국적이탈 신고기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직업전선에 뛰어들기에는 그 이후는 늦은 나이이므로 결국은  자신들의 꿈을 접었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물론, 내 아이는 인생을 해외에서 보낼 것이므로 이러한 병역의무 기피 대상이 아니고 국적이탈 심사도 무난히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혹여 아이가 독일에 살다가 갑자기 프랑스 방위 관련 직업군을 갖기를 희망하게 된다면 무조건 만 18세 국적이탈 신고기간을 준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왕에 이런 거 이곳 한국 영사관에 아이 출생신고를 하기로 남편과 결정했다. 이로써 아이의 출생신고를 프랑스 대사관 한국 영사관 이렇게 두 번 하게 되었다. 출생신고를 하려면 병원에서 출생증명서를 받아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남편과 나의 결혼 증명서 공증본, 각각의 기본증명서 발급을 위해 나는 대한민국 영사관 남편은 고국의 기본증명서 발급기관을 컨택해야 한다!

새삼 대한민국인으로서 프랑스 국적을 가진 남자와 독일에서 거주하며 아이를 한 명 낳는다는 것이 참 복잡스럽게 느껴지는 하루다. 

이제 시작이고 나 솔직히 자신 좀 없는데 그래도 잘해보자 여보.